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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도 시저라_ Albedo Caesura

임대 사옥  (근린생활시설 대수선)

 

2025

위치: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지역/지구: 제1종일반주거지역

대지면적: 408㎡

규모: 지상2층, 지하1층

용도: 근린생활시설

건폐율: 39.40%

용적률: 66.53%

연면적: 271.44㎡

시공: (주)이니셜디

사진: 박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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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도 시저라, 강남의 그림자에 기록된 백색의 숨표

01. 도심의 역설, 그리고 빌딩푸어의 초상

대한민국 욕망의 최전선, 강남의 마천루 뒤편에는 기묘한 침묵이 흐른다. 대로변의 화려한 커튼월 건물이 도시의 번영을 노래할 때, 그 바로 뒷골목인 이면도로의 붉은 벽돌 주택들은 서서히 질식해가고 있다. 우리는 이 현상을 빌딩푸어(Building Poor)라 명명한다. 등본에 찍힌 자산 가치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지만, 통장에 찍히는 현금 흐름은 '0'에 수렴하거나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기형적인 빈곤. 이것이 강남 노후 주거지의 냉정한 현주소다.

1980~90년대의 유산인 이 노후 건축물들은 엘리베이터의 부재, 열악한 주차 환경, 조악한 단열 성능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높아진 임차인들의 눈높이는 냉혹하게 신축 빌딩을 향하고, 남겨진 건물주들은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세금 폭탄과 유지비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팔자니 양도세가 자산의 절반을 잠식하고, 신축하자니 살인적인 금리와 건축비가 발목을 잡는 유동성 함정.

알베도 시저라는 바로 이러한 진퇴양난의 위기, 즉 건물이 슬럼화되어가는 임계점에서 시작되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절박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죽어가는 건물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것."

02. 누더기(Raggedness) 위에 쓴 팰림프세스트

대상지는 역삼동의 전형적인 주거지였으나, 지난 10여 년간 무리하게 사무소로 용도 변경되며 난도질당해 있었다. 세 번의 손바뀜, 그 과정에서 자행된 불법 증축과 철거의 흔적들은 건물을 건축이라기보다 차라리 누더기에 가깝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 건물을 전면 철거하는 자본의 논리 대신, 기존의 흔적 위에 새로운 질서를 덧입히는 ’도시적 팰림프세스트(Urban Palimpsest)‘의 방식을 택했다. 이는 자본력이 부족한 빌딩푸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자, 도시의 시간을 존중하는 건축가의 윤리적 태도이기도 하다. 핵심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덮을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었다.

03. 알베도(Albedo) : 난반사를 정돈하는 백색의 가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조형성을 상실한 외관과 고질적인 누수를 안고 있는 경사 지붕이었다.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볼륨 마스킹(Volume Masking)‘이라는 기법을 도입했다. 낡은 지붕을 철거하는 대신, 하중 부담이 적은 경량 철골 구조로 건물의 상부를 감싸 안아 간결한 박스 형태로 치환한 것이다.

이 새로운 매스에는 석재 질감의 금속 패널을 적용하여 정교한 그리드를 입혔다. 주변의 무질서하고 채도가 높은 붉은 벽돌들 사이에서, 이 백색의 그리드는 가장 높은 반사율(Albedo)을 가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것은 건물을 실제보다 웅장하게 보이게 하는 시각적 장치이자, 난립하는 도심 풍경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건축적 정화다.

지붕이 질서를 대변한다면, 1~2층의 기단부는 타일이라는 이질적인 물성을 통해 시간의 켜를 드러낸다. 과거의 개구부를 존치하되 재료의 질감을 달리함으로써, 건물은 옛것과 새것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세련된 몽타주‘를 완성한다.

04. 시저라(Caesura) : 소음과 침묵 사이의 켜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건물이 신축 오피스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진입하는 순간의 경험이 압도적이어야 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시(詩)의 운율 중간에 놓이는 숨표, 즉 ’시저라(Caesura)‘의 개념을 공간에 도입했다.

도로에서 빗겨난 진입 동선, 주차장의 소음과 보행자의 시선을 분리하는 솔리드한 난간벽은 도시의 번잡함을 걸러내는 필터(Filter)다. 이 벽을 따라 걷는 진입로는 단순한 이동 공간이 아니라, 업무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 마음을 정돈하는 전이의 공간이 된다. 복도 끝자락, 담장으로 위요된 작은 정원은 도심 속의 ’동굴‘처럼 아늑한 침묵을 선사한다.

또한, 임대 수익의 사각지대였던 지하층을 살리기 위해 1층 외부 바닥을 과감히 들어내어 빛의 우물을 만들었다. 눅눅했던 지하 창고에 빛과 바람이 스며들자, 그곳은 비로소 숨 쉬는 크리에이티브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05. 에필로그 : 생존을 위한 우아한 프로토타입(Prototype)

알베도 시저라는 강남의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 즉 자산의 가치를 지키려는 건물주의 투쟁에 대한 건축적 응답이다. 우리는 막대한 자본 없이도, 불법과 무질서를 걷어내고 단정함이라는 가면을 씌우는 것만으로도 건물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이 백색의 건물은 이제 강남이라는 복잡한 문장 속에 찍힌 하나의 명징한 쉼표다. 그리고 어쩌면, 이 도시에 만연한 '빌딩푸어'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전략적인 프로토타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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