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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리스크_ The Glisk

A 컨텐츠기업 사옥 + 사진 스튜디오 + 단독주택

 (근린생활시설 증축, 용도변경, 대수선)

 

2025

위치: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지역/지구: 2종일반주거지역

대지면적: 368.1㎡

규모: 지상5층, 지하1층

용도: 다중이용시설(고시원) -> 근린생활시설, 단독주택

건폐율:58.34% -> 56.97%

용적률:198.39% -> 199.25%

연면적: 971.31㎡ -> 937.12㎡

시공: (주)다우종합건설

사진: 송유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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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고 라텐스(IMAGO LATENS): 잠상에서 현상된 완전한 형상

 

도시의 시간은 수평으로 흐르지만, 기억은 수직으로 쌓인다. 여기, 대학가 굽이치는 언덕길 어귀에 쐐기처럼 박힌 낡은 건물이 하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고시원'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청춘의 고단한 쪽잠을 재웠던 이곳. 이제 이 건물은 '이마고 라텐스(IMAGO LATENS)'라는 새로운 이름을 입고,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려 한다.

귀환(Nostos), 그리고 이마고(Imago)
 

축은 땅 위에 짓지만, 결국 사람의 기억 위에 지어진다. 클라이언트는 이 거리의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는 이 근처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며,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수없이 이 앞을 오갔던 청년이었다. 배고픈 학생 시절, 그에게 이 낡은 고시원은 닿을 수 없는 타인의 성채이자 불확실한 미래가 투영된 배경이었을 것이다.

성공한 사진작가가 되어 다시 이 자리에 돌아왔을 때, 그는 비로소 이 건물이 품고 있던 '숨겨진 상'을 보았다. 우리는 이것을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한 '노스토스(Nostos, 귀환)'의 여정이라 해석한다. 긴 모험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영웅처럼, 그는 관찰자에서 공간의 주체로 귀환했다.

건물의 이름 'IMAGO LATENS'는 중의적이다. 'Latens'는 셔터를 누르고 현상액에 담그기 전 필름 속에 숨겨진 '잠상(Latent Image)'을, 'Imago'는 생물학적으로 번데기 껍질을 벗고 나온 '완전한 성충'을 뜻한다. 이 건물은 낡은 껍질 속에 웅크리고 있던 잠재력이 건축주라는 현상액(Developer)을 만나, 비로소 자신만의 완전한 형상(Imago)으로 세상에 드러난 결과물이다.

 

흑과 백, 대지의 무게와 이상의 부유(Levitation)
 

리모델링은 건물의 뼈대에 새겨진 시간을 존중하는 행위다. 우리는 쐐기형 대지의 까다로운 조건을 억지로 바꾸는 대신, 그 날카로운 형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신 건물의 표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했다.

건축물의 외관은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명암법)' 회화처럼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로 완성된다. 대지에 뿌리 박은 기단부(1~2층)는 거친 텍스처의 다크 그레이 컬러 도장으로 마감했다. 이는 묵직한 현실의 무게이자, 건축주가 지나온 치열했던 수련의 시간을 상징한다.

반면, 그 위에 얹혀진 상층부(3~5층)는 매끄러운 순백색이다. 어두운 기단 위에 떠 있는 하얀 매스는 마치 중력을 거스르고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초현실적인 인상을 준다. 가로수의 푸른 잎사귀 위로 하얀 덩어리가 구름처럼 떠 있는 풍경. 그것은 현실의 기반 위에 구축된 예술가의 이상향이자, 아직 인화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백지다.

수직적 심도(Depth): 일과 삶의 현상학적 재정의
 

이 집에서 '일'과 '삶'은 단절된 두 개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는 이를 '의식의 수직적 상승'이자 '심도(Depth of Field)의 조절'이라는 개념으로 재정의했다. 지하에서 옥상으로 오르는 여정은 마치 사진이 현상되는 과정처럼, 혹은 인간의 내면이 깊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치유의 과정과 닮아 있다.

1. 심연의 동굴 (지하층): 무의식과 영감의 암실 
가장 깊은 곳, 지하에는 암실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필름을 현상하는 이곳은 건축주의 내면 가장 깊은 곳, 즉 무의식의 영역이다. 빛이 차단된 이 고요한 동굴은 창조적 영감이 태동하는 자궁과 같다. 여기서는 '노동'이 아닌 순수한 '몰입'만이 존재한다.

2. 소통의 광장 (1~2층): 아카데미와 갤러리 
도로에서 바로 접근하게 되는 이곳은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과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이 교류하는 '제3의 공간'이다. 건축주는 이곳에서 자신의 과거(학생들)를 마주하고, 지식을 나누며 사회적 자아를 실현한다.

3. 부유하는 안식처 (3층): 관조와 회복 
저층부와 상층부를 구분 짓는 가로의 띠창이 있는 이 층은 건축주의 주거 공간이다. 이곳은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격리된, 구름 위의 산책로와 같다. 아래층에서의 치열함을 뒤로하고 올라온 이곳에서, 그는 창작자가 아닌 생활인으로 돌아와 휴식한다. 3층의 테라스 정원은 그만의 사적인 숲이 된다.

4. 빛의 아틀리에 (4~5층): 치열한 현상(Developing) 
가장 높은 곳, 하얀 매스의 상층부는 이 건물의 심장인 스튜디오다. 기존 4층과 5층의 바닥을 터서 만든 높은 층고는 빛을 가득 머금는다. 이곳은 영감이 구체적인 실체로 만들어지는 '포이에시스(Poiesis, 제작)'의 현장이다. 3층 집에서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도달하는 이곳은, 물리적 거리는 '0'에 가깝지만 심리적 밀도는 가장 높은 공간이다.

이 수직적 배치는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심도(Depth of Field)'를 조절하는 것이다. 건축주는 층을 오르내리며 자신의 모드를 전환한다. 때로는 깊은 심도로 세상과 소통하고(저층부), 때로는 얕은 심도로 자신에게만 집중하는(상층부) 삶. 이것이 우리가 제안하는 '직주일체'의 새로운 해법이다.

뷰파인더가 된 창, 그리고 코모레비
 

기존 고시원의 무미건조한 창들을 지우고, 우리는 3층에 가로로 긴 띠창(Ribbon Window)을 냈다. 이 창은 사진가가 세상을 보는 뷰파인더와 같다.

내부에서 이 창을 통해 밖을 보면, 굽이치는 도로의 역동성이 파노라마 영화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밖에서는 가로수의 무성한 잎사귀가 시선을 걸러준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일본어로 '코모레비(木漏れ日, Komorebi)'라 불리는 그 빛의 산란이 창가에 머문다. 매트한 벽체와 대비되는 유리의 반짝임(Glossy)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을 지켜주는 얇은 막이다.

맺음말: 현상되지 않은 시간을 위하여


'이마고 라텐스(IMAGO LATENS)'. 이제 이 건물은 더 이상 누군가의 배경으로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검색창에 이 낯선 단어를 입력했을 때, 사람들은 물리적인 건물의 형상 너머, 낡은 일상의 껍질을 깨고 발현된 잠재력의 이야기를 먼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곳은 낡은 것을 부수고 새것을 세운 곳이 아니다. 묻혀 있던 시간을 빛으로 씻어내 (Developing),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정착(Fixing)시킨 결과물이다. 이것은 건축주가 쓴 자서전이자, 우리가 도시에 바치는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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