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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 STORYTELLING_ 도시이야기

DO SANGDANGHAP
상(수) 당(인) 합(정) -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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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2017년 CIID의 개소와 동시에 6년간 연이어 이어졌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느꼈던 소회를 풀어낸 것이다.

우연히 맡게 된 하나의 프로젝트가 타이밍 좋게도 개발의 빠른 흐름으로 인해 10개의 신축, 리모델링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시작에 비해 거대한 행운이었다. 부동산 개발 논리는 시간도 돈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었고, 마른 걸레를 쥐어 짜내어 수익률을 극대화 하는 것이 중요 목표였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무색무취의 박스형 건축물을 양산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키멜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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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토정로 사이에 있는 당인리발전소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당인동, 합정동 일대는 당인리발전소(현 서울화력발전소)의 배후주거지로서 낡은 주택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동네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석탄발전소가 있었던 이곳에는 석탄 수송을 위해 용산역으로 향하는 철도(당인리선)가 있었고, 1970년대 중반 그 철로가 철거되면서 자연스럽게 넓은 도로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토정로라는 이름의 이 도로는 마포구가 추진하는 '당인리 역사문화거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당인리발전소를 거점으로 합정역과 상수역을 이어주고 그 길을 따라 맛집과 카페, 공방들이 하나하나 들어서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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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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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가 종이로 만든 오묘 컨셉모형

처음 이 거리를 마주했을 때에 인상은 시간이 멈춰있는 거리 같았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독막로를 기준으로 20여 년 전 부터 북측의 홍대 앞 거리가 북적거리던 것과 대비되는 분위기다. 관리하지 않아 더럽혀진 건물들 사이로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치우지 않은 쓰레기 더미들, 등교한 자취생들과 일터로 나선 직장인들이 비운 대낮 거리는 노인들만 오고 다닌다. 대신 홍대 앞의 예술인들이 높아진 임대료에 치여 이곳으로 넘어온 이유로 조그마한 공방이나 지하 작업실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는데 언젠가 이 곳을 아티스틱한 분위기로서 바꿔줄 불씨가 되줄 것 같았다.

오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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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정비구역을 추진중인 상수동, 당인동, 합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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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가 그린 플라티스 컨셉 스케치

어쩌면 우리는 모두 예술가일지 모른다. 집을 나서기 전 무심코 집어드는 옷가지일지라도 각자의 취향이 반영되는 것이다. 그렇게 조합한 옷에 다양한 스타일의 가방과 장신구를 걸치고 거리를 거닐게 되는 장면이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바로 예술이라 한다면 전문가가 아닌 일반 클라이언트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 오래전부터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서 드러내고 있는데,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건축물도 그들의 표현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새롭게 구성되는 이 동네의 개성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힘이 되고, 거리가 다채로워지는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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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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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가 그린 파셜플리츠 컨셉 드로잉과 펀칭메탈 패널 샘플

우선 우리가 건축가라고 해서 ‘우리의 아이디어와 취향이 무조건 옳다’ 라고 하는 오만한 생각을 내려놓아야 했다. 대신 클라이언트의 작은 이야기라도 들으려 다가갔고 그들의 취향을 탐닉하도록 했다. 그러한 이유로 만화 같은 순수함도, 남들과는 다른 별난 감성도, 눈에 띄지 않는 무던함도 모두 허용됐다. 평생 한번 지어볼까 말까 하는 건축물에 본인의 입김을 불어넣는 것만큼 가슴 두근거리는 행위가 있을까?

파셜플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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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이트플라츠 클라이언트의 미팅수첩

대신 사옥으로서, 사업장으로서 냉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선택에 있어서는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특히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임대공간을 계획하는 데에 있어서 주택과 같이 본인만의 공간을 계획하는 것처럼 개인의 취향을 너무 드러내게 된다면 실제 이용자인 임차인이 그 공간을 선택할 확률이 많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꾸준히 상기시켰다. 게다가 법적인 근거를 상세히 알려주고 각종 계획이나 디자인의 과정뿐만 아니라 디테일이나 자재, 기기들에 대해서까지, 설계나 시공과정에 있어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 미팅이 아닌 건축학교나 학원인 것처럼 하나하나 그들에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오랜 시간의 대화와 장황한 설명으로 인해 귀찮아하거나 바쁘다고 자리를 뜨는 경우도 많았지만, 어느새 인터넷에 있는 다양한 정보를 찾아 먼저 물어봐주기도 하고 건축박람회에서 샘플을 직접 가지고 오기도 할 정도로 열정을 갖게 되었다. 박스를 접어 형태를 만들기도 하고 본인의 회의실로 데리고 가 바닥에 실의 크기만큼 테이프를 붙여 공간감을 느껴봤다며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클라이언트의 관심과 열정이 활활 타오르게 되니 이제 이 건축물의 설계는 건축가가 아닌 클라이언트 본인이 직접 하는 기분이 드는가 보다. 어떤 클라이언트는 누군가에게 '이 건물 내가 설계한다' 하며 그들의 자부심을 마음껏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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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이트플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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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공장을 운영하는 하라이트플라츠 클라이언트가 직접 고른 도장컬러

그러한 이유로 우리가 제일 경계했던 것 중 하나는 각종 SNS와 이미지 포털사이트들에서 유행처럼 범람하는 디자인을 차용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했던 점이다. 단순히 시퀀스만 강조된 메인 컷 한 장을 위한 휘발력 강한 이미지가 아닌, 도시의 문맥과 건축물로서의 기능을 바탕한 클라이언트만의 예술품이어야 했다. 이곳만이 가진 지역성을 바탕으로 이유와 근거가 명확한 건축물로서 클라이언트의 색이 자연스레 표현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 당인리발전소 일대는 노후화된 거리에 젊음이 태동하는 분위기로서 클라이언트 개개인의 개성 넘치는 감각을 최대한 노골적으로 드려내도 좋은 환경이다. 그 건축물들이 곳곳에 흩뿌려져서 구불구불한 동네 곳곳에 숨겨진 클라이언트만의 예술품을 우연히 마주할 수 있는 재미의 요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라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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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임 클라이언트가 직접 만들어 온 컨셉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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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뚱딴지

이렇게 하나하나 공을 들여 설계를 한 뒤에 공사를 하게 되면 클라이언트의 관심이 더 커졌다. 현장에 매일 들를 정도로 열정을 불태우기도 하고, 우리와 상의 없이 실시간으로 계획을 변경하기도 했다. 그래서 솔직히 좀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그들이 애정을 쏟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우리는 클라이언트에게 우리 건축물은 사재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우리 건축물을 보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은 공공재일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상기시켰다. 우리의 도시경관이 좀 더 좋아지도록 일조함과 동시에 우리가 함께한 건축물이 더 눈에 띄게 되면 목적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느냐며. 그렇게 외장재에 대한 재료나 색감. 그리고 디테일에 대해 조금 더 예민하게 들여다보고 꼼꼼히 따져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클라이언트가 자발적으로 더 좋은 디자인이나 재료로 업그레이드를 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이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내리는 결정과는 비할 수 없는 그들의 순수한 재미요소이자 열정의 산출물이다.

면면면

그렇게 애정이 잔뜩 묻으며 건축물을 완성시키고 나면 그들은 우리를 더 이상 업자로 보지 않았다. 함께 머리 맞대고 대화하고 고민했던 사업 파트너이자 막연히 어렵게만 느껴졌던 건축물을 만들 수 있도록 하나하나 알려준 선생님으로 여겨주었다. 사옥으로서 직원의 큰 만족도로 인해 뿌듯한 마음이 더 커졌다고 하거나 공실 없이 바로 임차인을 구하게 되어 마음이 너무나 편안하다고 했다. 가족에게, 지인에게, 직원에게, 부동산 중개인에게, 임차인에게 '본인이 설계한' 건축물이라며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그에 이어 그들의 가족과 지인에게 우리를 멋진 건축가라며 소개해주며 우리 대신 영업을 해주기도 할 때면 너무 고마워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무리 대단한 건축가일지라도 사업비를 내는 주체인 건축주 본인이 애정을 쏟는 것만큼 더 대단한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우니 단지 우리는 그들의 힘을 당겨서 쓴 것 뿐인데, 고맙게도 우리의 공을 잊지 않고 챙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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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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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셉션 클라이언트와 마지막 현장 점검 

마침내 상수동, 당인동, 합정동에 10개의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어쩌면 거친 환경 속 생존이 우선시되는 상황임에도 클라이언트들은 우리의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실행될 수 있도록 힘을 주었기 때문에 6년간 이어진 각각의 프로젝트를 하나의 맥락으로서 긴 호흡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도 여느 건축가나 디자이너만큼 열정이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최대한 우리의 색을 숨겨봤더니 오히려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건축물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디자인은 정답이 없고, 좋고 나쁨에 대해 충분히 주관적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클라이언트가 비록 엉뚱하거나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린다고 할지라도 최대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존경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우선해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클라이언트 없이는 건축 할 수 없으니 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디자인이 가장 현대적인 것이라 믿어야 한다. 이는 우리 CIID_ Contemporary Idea for Interactive Design의 디자인 모토이며 이번 ‘상(수)당(인)합(정)시다’ 실험으로 그 합이 상당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우린 그 믿음으로 계속 앞으로 나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건축이다.

스토리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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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합시다 프로젝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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